비빔밥 속 맛있는 이야기

Date. 2018-03-09

우리가 허투루 보아 넘겼던 비빔밥 한 그릇에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풀었다. 꼭꼭 씹고 음미할수록 더 맛있어지는 비빔밥 이야기.

BIBIMBAP STORY

우리에게 친숙한 음식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로 손꼽히는 비빔밥. 갖은 재료를 더해 쓱쓱 비빈 다채로운 맛만큼이나 비빔밥에 얽힌 이야기는 복잡다단하다. 우리가 허투루 보아 넘겼던 비빔밥 한 그릇에 얽히고 설킨 이야기를 풀었다. 꼭꼭 씹고 음미할수록 더 맛있어지는 비빔밥 이야기.

 

 

“밥상 위에 밥과 찌개, 반찬, 젓갈과 각종 장류가 있다. 넓고 오목한 숟가락이 있으니 찌개나 장을 떠서 밥에 얹든 비비든 할 수 있다. (중략) 집고, 뜨고, 얹고, 비비고 말고 하는 모든 것은 먹는 이의 마음이다”

-《한성우 저, 우리음식의 언어》 中

 

무릇 ‘비빔밥’이라 하면 색색의 나물과 탐스러운 달걀노른자가 올라간 육회, 붉은 약고추장 등을 유기그릇에 정갈히 담아낸 전주비빔밥을 떠올린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명절마다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것도, 냉장고 속 반찬을 양푼에 모아 비빈 것도, 갓 지은 밥에 달걀과 간장, 참기름만 더한 것도 모두 비빔밥이 아니던가. 이런 의미에서 비빔밥은 참으로 특별하고도 오묘하다. 들어가는 재료도 모양도 맛도 다르지만, 비비는 행위를 통해 ‘비빔밥’이라는 동일한 음식이 된다.

비빔밥의 자율성에 대해 국어학자 한성우 교수는 저서 《우리음식의 언어》에서 “밥상 위에 밥과 찌개, 반찬, 젓갈과 각종 장류가 있다. 넓고 오목한 숟가락이 있으니 찌개나 장을 떠서 밥에 얹든 비비든 할 수 있다. (중략) 집고, 뜨고, 얹고, 비비고 말고 하는 모든 것은 먹는 이의 마음”이라 했다. 우리네 밥상에서 밥에 무언 가를 비비는 것은 특별한 재료나 방법 없이도 일상 식사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자 자연스러운 식문화인 것이다.

 

골동반(汨董飯)

골동반과 부븸밥, 그리고 비빔밥

비빔밥이 문헌에 등장한 것은 1890년대에 필사된 한글 조리서 《시의전서》에서다. 한자로 ‘골동반(汨董飯)’, 한글로 ‘부 밥’이라 소개하는데, 골동반이라는 명칭 때문에 비빔밥의 원형이 중국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중국 문헌인 《작학집요》 속 골동반은 우리의 그것과 조리법에서 차이가 있다. 《시의전서》 속 골동반이 “정히 지은 밥에 볶은 고기와 간납(가장 중요한 반찬이라는 의미로, 여기서는 전유어를 의미), 각색 남새(나물), 다시마튀각을 올리고 깨소금, 참기름을 넣고 비빈 다음 그릇에 담은 것”이 라면, 《작학집요》는 “어육 등 여러 가지 것을 미리 쌀 속에 넣어 찐다”고 했다. 비빔밥보다 돌솥밥에 가까운 형태다.

 

우리나라 문헌에서 ‘골동’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49년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이다. “강남(江南) 사람들은 반유 반(盤遊飯)이란 음식을 잘 만든다. 젓·포·회·구운 고기 등을 밥에 넣은 것으로 이것이 곧 밥의 골동(骨董)이다. 예부터 이런 음식이 있었다”고 기록했다. 여기서 강남 사람들은 중국인을 뜻한다. 우리네 ‘골동반’은 기록에 따라 한자가 조금씩 다르다. 《시의 전서》에서는 어지러울 골(汨)과 비빔밥 동(董)을 사용한 반면, 1924년 위관 이용기가 쓴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는 여러 가지 물건을 한데 섞은 것이라는 의미의 ‘골동(骨董)’이라는 단어로 소개한다.

 

등심비빔밥

 

비빔밥의 유래를 찾아서

비빔밥의 기원에 대한 주장은 비빔밥 종류만큼 다양하다. 제사 음식을 한데 섞어 먹은 데서 기원했다는 ‘음복설’, 동학농민혁명 당시 부족한 음식을 모아 함께 비벼 먹었다는 것에서 비롯됐다는 ‘동학혁명설’, 몽골 침입 당시 초라하게 올릴 수밖에 없었던 수라에서 시작되었다는 ‘궁중음식설’, 묵은 음식을 정월 보름에 먹었다는 ‘묵은 음식설’, 농번기 새참을 나르기 쉽게 한 그릇에 담아 갔다는 ‘농번기 음식설’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에서 많은 지지를 받는 것이 ‘음복설’이다. 《조선무쌍신식 요리제법》에서는 잔치의 비빔밥은 ‘삼채기 물건을 쓰레기통에 넣는 것같이 여러 가지를 휩끄러 넣은 밥’이라 표현한다. 반면 제사음식을 비빈 것은 ‘진비빔밥’이라 칭하며 음복의 의미로 설명 했다. 정성을 다해 조상께 차린 음식을 후손들이 나눠 먹는 것은 유교의 기본 원리이자 가난한 사람이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진주비빔밥과 안동 헛제삿밥이 음복설에 힘을 싣는다.

비빔밥이 하나의 요리로 자리 잡은 것은 외식산업이 발달하면서 다. 한식학자 김상보 교수는 저서 《한식의 도를 담다》에서 “《동국세시기》 이전의 고조리서에 골동반이나 비빔밥 등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밥과 반찬을 단순히 섞어 먹는 것이어서 찬품명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며 “비빔밥이 정식 찬품명으 로서 등장한 최초의 조리서 《시의전서》 또한 외식 산업의 발달에 따른 비빔밥의 성행으로 정식 이름을 가지게 된 듯하다”라고 적었다. 실제 조선 후기부터 골목마다 상업적인 분위기가 가득 했던 서울에는 설렁탕, 장국밥과 함께 비빔밥을 판매하는 식당들이 제법 있었다고 한다.

윤식당 불고기비빔밥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입맛에 따라 비빔밥의 모습 또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비빔밥이 혼돈 속의 질서를 만드는 역동적인 음식인 점만은 변함이 없다. 신선한 미각적 자극과 변화무쌍한 미식의 세계를 만나기 바란다면 지금 당장 꽃처럼 피어난 한 그릇 비빔밥을 뒤섞고 비벼보자. 비벼지는 혼돈의 과정에서 새로운 맛의 질서를 느끼고 감동하게 된다.

 

참고도서

《우리음식의 언어》(한성우 저, 어크로스), 《한식의 도를 담다》(김상보 저, 와이즈북), 《식탁 위의 한국사》(주영하 저,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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